살기 위해서 먹나? 먹기 위해서 사나?
인간은 잘 몰라도 야생 동물은 살기위해 먹는다. 먹는 일을 행복의 조건으로 따지거나, 먹이의 질에 열광하지 않는다. 음식이 삶의 조건이라 먹이 문제에 더욱 절박해지고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뽕잎이나 참나무 잎 같은 식물 조직을 먹는 나비나 나방 애벌레들은 다른 동물들이 소화하지 못하는 식물의 섬유소를 양질의 단백질로 바꾸고, 독성이 있는 식물의 잎을 해독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갖춘 동물이다. 게다가 소시지처럼 통통하고 걸리적거리는 것 없이 매끄러워 부드럽게 넘어가므로 대부분 포식자가 가장 선호하는 먹잇감이다.
주변의 거의 모든 동물, 심지어는 같은 곤충들조차도 영양분 덩어리인데다 먹기 좋은 나비나 나방 애벌레를 호시탐탐 노린다. 나비나 나방 애벌레들은 무차별적으로 공격받지만 수천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 가장 많은 종수와 개체 수로 다양한 진화적 경로를 거쳐 변화하고 발전해 왔다.
그들은 어떻게 살아왔을까.
일부 애벌레들은 숨기보다는 적극적인 대응 방법을 택했다. 애벌레들의 가장 위협적인 천적은 바로 새. 그러나 새들도 뱀의 먹이일 뿐이다. 일부 애벌레는 무시무시한 뱀이 되기로 했다. 뱀의 눈을 모방한 위협적 외형으로 천적의 기를 꺾는다.
가짜 머리와 안점은 나방과 나비의 많은 종에서 진화해 왔는데, 보통 머리 뒷부분에서 나타난다. 공격을 받으면 순간적으로 적의 눈앞에 독을 가진 가짜 뱀의 눈으로 놀라운 무늬를 내보여 방어한다. 먹이를 낚아채려고 접근했던 포식자가 갑자기 뱀의 무서운 시선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음을 깨닫고 화들짝 놀라 도망하게 된다.
주홍박각시의 애벌레는 위협을 받아도 조급해하지 않고 스르륵 뱀처럼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가짜 눈을 돋보이게 한다. 진짜 뱀 같다. 정면에서 바라본 멧누에나방의 뱀눈은 진짜 뱀눈보다 더 섬뜩해 빨리 자리를 피해야 할 것 같은 형상이다.
가짜 뱀 눈 같은 외형적 모습이 아닌 행동학적으로 따라 하는 놈들도 있다. 과시하기 위한 행동으로 몸 앞부분을 들어 올려 뱀과 같은 자세를 취하며 물거나 혹은 물것처럼 행동하는 방어 전략을 구사하기도 하고, 배 끝 항문에 붙어있는 다리를 한껏 들어 올려 살모사의 꼬리처럼 보이게 하면서 ‘건드리면 물 거야’ 라고 경고하는 방어 전략을 편다.
뱀의 외형을 한 애벌레들이 기생은 당할지언정 잡아먹히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을 보면 ‘나는 뱀이다’의 효과는 있는 것 같다. 자연 선택으로 진화하고 있는 곤충들의 생존 전략, 성공 신화라 할 수 있다.
[이신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