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마니아타임즈 김세혁 기자] 지난 4월 영국 푸드 스타트업이 야생 호랑이 고기를 발표했을 때 식품업계는 크게 술렁였다. 콩 같은 식물을 가공한 베지미트(vegemeat)부터 시작한 대체육이 소고기나 돼지고기, 닭고기 맛을 내더니 저 멀리 초원이나 시베리아 벌판까지 카테고리를 확장했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프라이미벌 푸드(Primeval Foods)가 4월 2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대체육들은 가축이 아닌 대자연 속 야생동물의 세포를 배양한 결과물들이다.
이 회사는 이론적으로 세포배양을 통해 어떤 동물의 고기도 만들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호랑이 고기는 실제 아프리카 기린이나 시베리아 호랑이를 사냥해 요리하는 것은 절대 안 될 일이지만 세포만 이용한 고기 생산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덕분에 보통 사람이라면 평생 맛보지 여러 야생동물의 고기를 이제 대중도 접하게 됐다.
프라이미벌 푸드는 단순히 야생동물 고기를 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호랑이 스테이크, 얼룩말 스시롤, 기린 등심, 사자 햄버거 패티 등으로 메뉴를 세분화했다. 용도에 맞게 정갈하게 꾸민 포장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단순히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야생동물 고기를 택한 건 아니다. 프라이미벌 푸드 관계자는 “지금까지 축산 역사를 감안할 때 야생동물 고기를 먹음으로써 인류 건강은 증진돼 왔다”며 “야생동물 세포 배양육은 우리 뇌의 회전이나 장내 세균총의 진화를 촉진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건강한 야생동물 배양육이 건강하지 못한 콜레스테롤과 포화지방산을 줄이고 단백질과 아미노산을 보충해줄 것”이라며 “숙면이나 정서 안정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잘 배양된 재규어 고기를, 치매 예방에는 코끼리 고기를 권장하는 시대가 곧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람 세포 이용한 대체육 개발도 활발
야생동물 고기보다 더 충격적인 건 사람 세포를 활용한 배양육이다. 미국 생물학 연구소 ATCC(American Tissue Culture Collection)는 2020년 11월 영국 디자인뮤지엄에서 열린 세계적 전시회 ‘비즐리 디자인 오브 더 이어(Beazley Designs of the Year)’에 사람 세포를 배양해 만든 대체육을 처음 선보였다.
당시 ATCC 관계자들은 ‘우로보로스(Ouroboros)’로 명명된 이 배양육으로 먹음직한 스테이크를 만들어 전시했다. 우로보로스는 ATCC 소속 과학자가 직접 자기 뺨 안쪽 세포를 채취해 만들었다. 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은 사람 세포를 배양한 고기 스테이크에 경악했다. 일부는 우로보로스가 식인과 다를 게 뭐냐고 따졌다.
사실 우로보로스는 ATCC가 대체육에 대한 일반의 인식 변화를 기대하며 붙인 이름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거대한 뱀(용) 우로보로스는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다. 연구팀은 무한한 순환과 완전함을 상징하는 우로보로스야말로 인류가 대체육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근미래를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ATCC가 굳이 사람 세포를 배양한 이유는 지속 가능한 친환경성이 보장되는 데다 비용이 저렴해서다. 우로보로스는 현재 배양육 제조를 위해 가장 많이 쓰이는 소태아혈청(fetal bovine serum, FBS)이 불필요해 많은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다.
세포나 조직의 배양에 활용되는 소태아혈청은 임신한 암소를 잡은 뒤 적출한 태아에게서 얻는다. 태아성 단백질 페투인(fetuin) 함량이 높고 세포 증식 및 유지가 효과적이며 다루기도 쉬워 일반 세포 배양이나 신약연구, 인공육 개발에 널리 이용된다.
문제는 만만찮은 가격이다. 세포 배양 시 단백질 보충을 위해 FBS를 쓰려면 ℓ(리터)당 최대 700파운드(약 100만원)는 써야 한다. FBS를 이용한 대체육 생산이 과연 친환경적인지 생각하게 되는 대목이다. 새끼를 밴 암소를 도축하는 자체가 비윤리적이라는 비난도 거세다.
자가 세포를 사용하는 우로보로스는 단 3개월이면 배양이 끝난다. 면봉으로 적당히 구강 세포를 채취한 뒤 미리 양성한 버섯 균사체에 배양하면 끝이다. 사람 혈청을 주입해 단백질을 공급하므로 FBS도 필요없고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지도 않는다. 동물의 생명을 빼앗는 기존 세포 배양법과 달리 윤리적 문제로부터도 자유롭다. 더욱이 우로보로스 배양에는 기한이 임박한 수혈용 혈액에서 뽑아낸 혈청이 사용됐다.
ATCC 관계자는 “인류가 직면한 식량난과 세포 배양육에 필요한 비용 및 물자 문제는 절대 간과할 수준이 아니다”며 “이런 난제를 풀 대체 기술의 산물이 우로보로스”라고 설명했다.
이어 “단백질 수요를 충족하는 현실적 해결책으로 카니발리즘(cannibalism)을 권장하는 것이 아니다”며 “우리는 과연 FBS 같은 값비싼 재료를 계속 써야 하는지 문제를 제기한 것이며, 인류가 육식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희생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진 것”이라고 말했다.
■조만간 받아들여야 할지 모를 대체육
대체육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커졌지만 거부감도 아직 만만찮다. 우로보로스가 등장할 당시 일부 전시 참가자는 “사람을 잡아 먹는 카니발리즘과 다를 바가 없다”고 비난했다. 일부는 “인육을 먹느니 고기를 끊겠다”고 혐오감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대체육 분야에 사람 또는 야생동물 세포를 활용한 고기가 등장한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체육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식량 문제 때문에 인류가 싫어도 받아들여야 할 미래 먹을거리 중 하나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로 기름값이 치솟고 물류 시스템이 마비되면서 육류 가격이 오른 상황에서 대체육은 인류를 책임질 차세대 식재료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통계에 따르면 세계 인구는 오는 2050년 90억에 달할 전망이다. 그 때가 되면 식량난은 지금보다 훨씬 심각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유엔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폭발적인 인구 증가에 따라 오는 2030년 현재 축산업 및 어업으로는 인류의 단백질 공급을 감당하기 어렵다.
때문에 각국은 많은 돈과 인력을 들여 대체육, 특히 배양육 연구에 매달리는 상황이다. 배양육 시장 규모가 2050년경 1조 달러(약 1245조원) 규모까지 성장한다는 예측도 있다. 가축 한 마리를 키우기 위해 발생하는 환경오염 물질을 감안하면 세포 배양을 활용한 대체육 개발은 필수로 여겨지기도 한다. 학자들은 인공적으로 뽑아내는 대체육들이 불과 20여년 뒤 세계 육류 소비량의 60%가량을 차지할 것으로 추측했다.
프라이미벌 푸드 관계자는 “바이오리액터, 즉 체내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을 체외에서 이용하는 시스템을 통해 인류는 동물의 생명을 빼앗지 않고도 친환경적으로 고기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나 닭의 세포 배양육도 처음엔 비판을 받았으나 식감이 좋지 않고 고기 맛이 나지 않는 베지미트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며 대중화되는 분위기“라며 “세포 배양육이 고기 맛도 괜찮고 가격 면에서 우세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점차 늘고 있다“고 전했다.
대체육 연구자나 업체들로선 사람이나 동물 세포 배양육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줄이는 게 첫 번째 목표다. 프라이미벌 푸드는 사자 고기를 그대로 팔기보다 햄버거 패티로 가공, 상품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김세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