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법에서는 이혼의 방식으로 ‘협의이혼’과 ‘재판상 이혼’이라는 두 가지 방법을 규정하고 있다. 협의이혼은 이혼하려는 의사의 합치에 의해서 이뤄지며 그 원인은 묻지 않는다. 따라서 혼인관계 파탄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든 상관 없이, 두 사람이 합의만 하면 이혼에 이를 수 있다. 이에 반해 재판상 이혼은 부부 중 어느 한 쪽의 청구로 인해 법원이 강제적으로 이혼을 결정하는 것으로 법에서 정한 이혼원인을 전제로 한다. 이혼소송을 한다고 해 반드시 이혼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 민법 제840조에서는 재판상 이혼원인으로 6가지를 규정하고 있다. 그 내용으로는 ① 배우자에 부정한 행위가 있었을 때 ② 배우자가 악의로 다른 일방을 유기한 때 ③ 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④ 자기의 직계존속이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⑤ 배우자의 생사가 3년 이상 분명하지 아니한 때 ⑥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가 그것이다. 굳이 비율을 따지자면 1호가 20~30% 정도이고, 나머지 70~80%는 6호를 이유로 한다. 2호, 3호, 4호, 5호를 원인으로 하는 이혼소송은 거의 없다.
여기서 6호에 규정하고 있는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란 ‘부부간의 애정과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할 혼인의 본질에 상응하는 부부공동생활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되고 그 혼인생활의 계속을 강제하는 것이 일방 배우자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는 경우’를 말한다(대법원 2002. 3. 29. 선고 2002므74 판결). 또한 이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혼인계속의사의 유무, 파탄의 원인에 관한 당사자의 책임 유무, 혼인생활의 기간, 자녀의 유무, 당사자의 연령, 이혼 후의 생활보장, 기타 혼인관계의 제반사정을 두루 고려’해야 한다(대법원 2009. 12. 24. 선고 2009므2130 판결 참조).
두리뭉실하다고 느껴질 텐데, 이를 일반조항이라고 하고, 구체적인 사안마다 재판장이 이혼을 허용해야 하는지 case by case로 살펴보겠다는 의미라고 보면 되겠다. 그렇다면 혼인관계가 파탄돼 더이상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라면 그 원인을 묻지 않고 이혼을 허용해야 하는가? 재판상 이혼원인 중 6호에 의해서 이러한 해석(破綻主義)이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 학설과 판례는 파탄의 원인을 제공한 배우자는 원칙적으로 이혼청구를 허용할 수 없다는 유책주의를 따르고 있다.
우리 대법원은 ‘혼인생활의 파탄에 대하여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원칙적으로 그 파탄을 사유로 해 이혼을 청구할 수 없고, 다만 상대방도 그 파탄 이후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음이 객관적으로 명백한데도 오기나 보복적 감정에서 이혼에 응하지 아니하고 있을 뿐이라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가 허용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대법원 2004. 9. 24. 선고 2004므1033 판결). 비교적 최근의 전원합의체 판결도 유책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대법원 2015. 9. 15. 선고 2013므568 전원합의체 판결)
그러나 혼인생활은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해서 결정돼야 한다. 국가가 법으로 혼인생활을 강제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파괴하고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가능한 지양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 책임이 있든) 혼인관계가 이미 파탄돼 사실상 이혼상태가 오랫동안 유지된 경우에는 유책배우자에게도 이혼청구를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실제로도 이혼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상대방도 이미 마음의 정리가 끝난 상태이지만, ① 자신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선택했다는 것에 대한 보복감정 ② 지나치게 소액인 위자료 액수 ③ 사전에 치밀한 재산 은닉 등 때문에 이혼에 응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① 어느 일방의 보복감정에 따라 사실상 파탄상태인 혼인생활을 법률에서 강제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는 의문이고 ② 위자료 액수를 대폭 상향하여 현실화하는 것으로 제도 개선은 가능하며(현실은 5천만 원을 넘지 않지만 앞으로는 억대의 위자료 인정도 가능하지 않을까?) ③ 철저한 재산분할 조사 등을 통해 유책주의에서 파탄주의로 옮겨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어떻든 우리 대법원의 판결에 의할 경우 유책배우자는 이혼청구를 하더라도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 따라서 위 사례에서 홍상수 감독과 최태원 회장의 이혼청구는 허용되지 않는다. 다만 유책배우자의 상대방이 반소 등으로 자신 역시 적극적으로 이혼의사를 밝힌 경우에는 이혼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 것이므로 당연히 이혼이 허용되고, 대법원 판례에도 불구하고 하급심에서는 꾸준히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받아들이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재판에서도 ‘조정’ 등의 절차는 여전히 열려 있으므로, 유책배우자라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이혼의 길은 열려있다고 하겠다.
황민호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