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지하철 역사는 늘 붐빈다. 사람들은 바삐 길을 갈뿐 한눈 팔지 않는다. 차가 들어온다는 기계음이 들리면 바쁜 걸음이 더 빨라진다. 몇 분 후 다음 차가 오는 걸 알면서도 뛰다싶이 걷는다.
신설동이라고 다를 바 없다. 내려가기도 하고 올라가기도 하고 부딪치기도 하고 스치기도 하면서 촌각을 다툰다. 굳이 그럴 것 까지 없을 듯 싶지만 언제나 비슷한 풍경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침 저녁으로 옷깃을 스치지만 그들 누구에게도 서로가 인연이 아니다.
그러나 신설동 지하 역사엔 더러 한 눈 팔일이 있다.
바람에 흩날리는 수양버들이 연록의 신비함을 떨쳐내는 한 폭의 그림. 푸른 물빛을 향해 손짓하는 이파리와 이파리들이 살아서 하늘거리고 있다. 지친 마음을 보다듬어주는 녹색 자연의 찬란함. 눈도, 머리도, 몸도 심지어 귀, 코까지 5감을 깨우는 생명의 아름다움이다.
화가 이강화의 ‘리듬, 수양버들(180x90cm Oil on canvas, 2018)이다.
/작가 노트/
인천에서 서울 학교까지 가는 출근 도로는 언제나 주차장과 다름 없었다. 매립지 도로를 지나 올림픽대로를 만날 때까지 정체가 도무지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 날이 매일 반복되었다. 가양대교를 건너 강변북로로 우회전할라치면 아침 햇살에 눈부시게 빛나는 수양버들 군락지가 강물에 반사되어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빛을 뿜어냈다. 자칫 운전대를 놓칠까 염려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속 뫼르소가 강렬한 햇빛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장면이 이해될 정도였다.
그렇게 봄날 아침에 만나는 한강변의 버드나무는 혼돈의 나를 늘 흔들어댔다. 강화도를 스케치 여행을 다닐 무렵 저수지에서 반사되어 물과 앙상블을 이루며 시도 되고 노래도 되던 초여름의 녹색 수양버들도 늘 나를 불러세웠다.
소재의 끌림은 언제나 사정없이 나를 흔들었던 것 같다. 전기가 통하는 듯한 찌릿한 느낌이 드는 장소도 있고 소재도 있으니 말이다. 나의 드로잉 연습은 수양버들을 그리면서 시작되었던 듯 싶다. 녹색의 바람이 느껴지는 흩날림은 선으로만 표현이 가능했다. 아가들의 재잘거림 같은 버드나무 잎사귀도 선의 연결이었다.
수양버들도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4~5월쯤 타원형의 연녹색 꽃이 핀다는 걸 여러 차례 관찰하고 나서야 알았다.
연록의 어린잎이 햇살과 부딪히는 수양버들에는 생명과 충만함, 리듬, 흐름과 같은 작업의 원동력이 응집되어 있다. 힘이 들 때마다 충전이 되는 소재이고 나를 담금질하는 에너지다.
수변을 따라 길게 늘어선 수양버들 산책길에서 느끼는 바람은 모네가 그림을 그리던 지베르니가 아니어도 충분히 시원했다.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명도와 채도가 바람과 공기를 바꿔놓아 나는 방향을 바꿔가며 따라나녔다. 그래서 수양버들 그림에는 붓 자국보다 손가락을 이용해 물감을 칠한 부분이 훨씬 많다. 붓보다 재빨리, 손가락을 이용해 리듬을 타야했기 때문이다. 그러곤 나이프로 긁어내고 또 칠하며 머뭇거리지 않고 선을 쉼 없이 그어댔을 때 수양버들의 리듬이 계절을 달리하며 바람 길을 만들어냈다.
직감에 의존해 속도를 감지하고 붓끝과 손가락에 의지해 감각을 드러내는 작업은 이미지에 생동감을 불어넣기에 적합했다. 계절을 달리하며 색의 농도를 바꿔가는 물가의 버드나무는 힘을 잃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고마운 소재임에 틀림없다.
작가 이강화
인천 부평고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프랑스 파리 국립 8대학 조형예술학과 석사
세종대학교 예체능대학 회화과 교수
개인전 43회
갤러리 Pal, 서울
신세계 갤러리, 대구
이상원 미술관, 춘천
모나무르 갤러리, 아산
돈화문 갤러리, 서울
2005 한국구상대전. 예술의전당, 서울
Able 갤러리 초대전, 뉴욕
산책, 아트스페이스H, 서울
세종 갤러리, 서울
[이신재 마니아타임즈 기자/20manc@maniarepo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