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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국내 최대 증권사였던 대우증권 사장에 취임할 때였다. 종합지,경제지 등은 일제히 그의 프로필을 실었다. 대우증권 공채 출신으로 최연소 사장에 오른 그가 서울 미아리 고개 북쪽인 방학동 아파트에 산다는 것이 화제에 올랐다. ‘큰 돈’을 만지는 대형 증권사 사장이 사는 곳이 강북에서도 가장 낙후된 동네였기 때문이었다.
1963년 충남 연기군 서면(현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올라와 학창 시절 이후 줄곧 그 동네서 살았던 터였다. 지금까지도 거기서 불편함 없이 잘 살고 있다. 벌써 50년이 넘었다.
증권 전문가답게 주식을 해서 돈을 많이 벌었을 법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경제학자들은 부자가 없다’는 말처럼 증권맨으로 한 직장에서 최고 자리인 사장까지 올랐던 그가 생각보다 돈이 없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그는 돈버는 사람이 아니었으며 큰 돈이 움직이는 경제판을 분석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홍성국(60)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야기다. 그는 2020년 세종시 지역구 초선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재산공개를 했다. 당시 국회 공직자 윤리위원회가 공개한 바에 따르면 홍 의원의 재산 총액은 48억5,722만원이었다. 본인 소유인 서울 도봉구 방학동 아파트(신고가액 3억8,900만원·면적 147.48㎡)을 포함해 전세로 얻은 세종시 새롬동 새뜸마을 아파트(전세가 2억1,000만원·59.96㎡), 배우자의 사무실(서울 종로구 내수동 24.25㎡·2억8,500만원) 등이 주요 부동산었다. 본인과 배우자, 부모, 장남과 차남 등 일가족의 예금 18억7,210만원을 신고했고, 증권사인 미래에셋대우 사장을 지낸 본인과 배우자가 10억9,432만원어치 상장 및 비상장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신고 내역 중 토지는 본인 소유 1건, 아버지 7건을 포함해 총 8건으로 5억8,089만원에 달했다. 임야·전·답 등 토지 8건 소재지는 모두 세종시 연서면 신대리 고향 주변으로 드러났다. 대우증권 사장 당시와 비교해보면 국회의원 당선 무렵, 그의 재산은 많이 늘어나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나름 뒷얘기가 있었다. 그는 “신고 재산의 대부분은 아버님이 홍씨 문중 장손이라 문중 땅까지 합쳐진 것이었다. 사실 순수한 내 재산은 얼마 되지 않는다. 대우증권 부장 때까지만 해도 반지하 집에 살았다. 한 번은 목동 사는 대우증권 후배가 같이 북한산 등산을 갔다온 뒤 우리 집에 와서 벽에 곰팡이가 핀 것을 보고 놀라더라. 그만큼 경제적으로는 여유가 없었다”고 말한다.
홍 의원의 재산 내역 중 눈길을 끄는 건 저서 ‘수축사회’의 지적재산권 4,551만원이었다. 그는 대우증권 시절 ‘증권계의 미래학자’로 이름을 날렸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까지 총 7권의 경제관련 책을 냈다. ‘디플레이션 속으로’ , ‘세계경제의 그림자’, ‘미국. 글로벌 위기 이후’, ‘미래설계의 정석’, ‘세계가 일본된다’, ‘인재 대 인재’, ‘수축사회’ 등이다. 2018년 발간한 ‘수축사회’를 통해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증권맨에서 국회의원으로 변신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쪽집게’ 미래경제전문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진행되고 있는 수축사회의 모습과 생존방식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기 위한 시도로 낸 ‘수축사회’에서 한국 사회 상황을 한 눈에 알기 쉽게 소개한 사례가 있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에서 차가 가장 막히는 곳은 구리 톨게이트 주변, 서쪽은 중동~송내 구간일 듯하다. 외곽순환고속도로가 개통될 때부터 이미 이 두 지역은 상습 정체지역이었다. 중부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가 만나는 남이분기점에서 호남고속도로와 갈라지는 회덕분기점 구간의 확장공사를 기억해보자.” 이미 한국 사회는 각 분야에서 병목 상황이 심각하다는 예시였다. 한의과대학, 사범대학, 어문학과 등 대학에서도 공급과잉인 분야는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사회가 이렇게 살기 어렵게 된 이유를 ‘수축사회’라는 간단한 용어로 설명했다. 우리 사회를 비롯해 세상이 수축하기 시작한 이유는 인구 감소와 생산성의 획기적 증대로 공급과잉이 상시화되었으며, 역사상 최고 수준의 부채와 양극화로 더 이상 성장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과거 팽창사회와 정반대 환경이 고착화됐다는 것이다.
올해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60세가 되면서 고령 인구는 갈수록 늘고, 저출생 영향으로 40대 이하 인구는 줄어들면서 본격적인 세대갈등들이 나타난다고 한다. 특히 그는 자신과 같은 1963년생들을 ‘똥파리’라고 불렀다. 세대 문제와 관련해 스스로 비하시킨 말이다. 올해는 사망자가 출생자보다 많아지면서 고령화, 저출산과 함께 전체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탈산업화,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세대갈등을 예방하기 위한 시간이 이제 별로 없다고 한다.
그는 현재 우리 사회 위기를 마치 ‘쪽집게 도사’처럼 예언했다. 하지만 그가 놓친 부분도 있었다. 2020년부터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유행했다는 것을 ‘수축사회’를 낼 때는 미리 감지하지 못했다.
그는 "수축사회를 썼을 당시에는 코로나19라는 것을 예측을 못했다"면서 "코로나19로 인해 생각했던 것보다 금리를 더 낮추고 통화량을 더 많이 확대하는 다양한 정책 처방이 이뤄지다 보니 인플레이션이 펼쳐질 수 있을지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마이너스 성장을 내다봤지만,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각국이 제로금리에 가까운 극약처방들이 내려졌던 것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미·중 패권 경쟁에 대해서도 전방위로 벌어질 것이라는 점은 내다봤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고 강하게 나타나고 있고 그 결과로 인플레이션을 촉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잽 펀치’를 주고받을 것으로 예상했던 미·중 패권 경쟁이 ‘훅 펀치’를 날리는 격렬한 형태로 진행됐다.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터지면서 글로벌 공급망 등이 타격을 받으면서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을 예측 못 했다는 것이다.
다만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 격렬한 미·중 패권경쟁 등은 빠졌지만 기본적으로 미래 사회를 바라보는 방향, 지향은 여전히 같다고 설명했다. 수축사회를 ‘저성장 기조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정치, 경제, 환경을 비롯한 사회 모든 영역의 기초 골격이 바뀌고 사고방식까지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인류가 살아오면서 항상 생산력이 증대되고, 인구가 늘어나고 물가도 성장하면서 성장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원래 중세는 디플레이션 사회였다"면서 "산업혁명 이후에 달라졌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제는 오늘보다 내일의 파이의 크기가 같거나 줄어들고, 내 파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남의 것을 뺏어야 한다는 쪽으로 옮겨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수축사회라는 이름은 제로섬 사회라는 말과 유사한 데 더 나아가 파이 자체가 줄어드는 시대를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04년부터 ‘디플레이션 속으로’라는 책을 통해 우리 사회가 디플레이션 사회로의 진입 가능성을 경고했던 그는 "이후 책들은 어떤 관점에서 디플레이션 사회를 보느냐일 뿐 기본 방향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구가 줄면 이 같은 현상들이 나타난다. 우리나라도 이제 내수 관련 산업은 마이너스 성장으로 총수요가 줄 것"이라며 "음식료품, 섬유, 의복산업이 계속적으로 줄고 있고, 경제위기를 겪는 산업들 대부분은 공급과잉"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파동에 가까운 가격 변화를 겪었던 쌀 역시 수축사회가 가져온 변화의 하나로 설명했다. 그는 "변화된 새로운 내용 등을 업데이트해서 내년쯤 새로운 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한국 경제는 중증의 복합위기에 빠져 있다. 수출, 성장, 물가, 경상수지 어느 하나 성한 것이 없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부진한 성적표를 한 달이 멀다 하고 갈아 치우는 중이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일시적인 지표상의 부진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국이 미국에 최종 소비재를 내다 팔고, 한국은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하는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통째로 흔들리는 데서 오는 구조적인 위기라는 점이다. 중국시장이 급속히 위축되는 와중에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줄 것 다 주고 뒤통수까지 맞는 현실에서는 한국 경제의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가 설파한 ‘수축사회’는 우리 경제와 국가가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부자가 되지 못한 증권 전문가
1986년 대우그룹 공채로 입사한 그가 대우증권으로 발령을 받아 처음 맡은 보직은 여의도 지점 영업직이었다. 그는 시작부터 남달랐다. 영업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것이다. 남들이 모두 점심을 먹으며 휴식을 취할 때, 그는 고객들을 모아 투자 설명회를 열심히 했다. 열과 성을 다한 노력의 결과로 전국 영업소 1등을 차지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직후 신흥 부촌으로 떠오른 올림픽공원 지점으로 발령받았다. 그곳에서도 그의 빼어난 영향력은 계속됐다. 이후 본사 투자 분석부로 옮겨 온 그는 법인영업으로 큰 시장 업무를 맡았다. 1998년에는 156억 영업 실적을 올려 2천만원 성과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수중에는 항상 돈이 말라 있었다. 봉급은 전업주부의 아내와 두 아들 양육비로 충당했지만, 성과급은 고객들을 위한 사례금으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또 개인적으로 좀 더 일을 하는데 필요한 경제 관련 책 구입에 적지 않은 돈을 썼다.
그는 경제 기자로 이름을 날린 고 박무 머니투데이 창업자가 한 얘기를 들려줬다. 한국일보 경제부 기자출신인 박무 머니투데이 창업자는 기자로서 성공하기 위해선 ‘돈, 건강, 가족’ 세 가지에 연연해서는 안된다고 했다고 한다. 자신도 증권맨으로 활동할 때, 이 말을 듣고 공감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공부, 강의와 집필로 가정에 소홀한 자신에게 훌륭한 내조를 해 준 아내와 두 아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한 결과, 동기생들보다 머저 임원으로 승진했고, 2009년 전무이사와 이후 부사장을 거쳐 대우증권 사장에 취임했다. 2016년 미래에셋에 합병된 미래에셋대우 사장 퇴임을 끝으로 증권업계를 떠난 후 한국경제 발전에 대한 저술과 강연 활동을 활발했다.
정치인은 증권맨보다 어렵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세종특별자치시 갑 선거구에서 전략공천돼 56.4%의 득표율로 20대 비례대표 의원 출신의 미래통합당 김중로 후보, 정의당 이혁재 후보를 제치고 당선되었다. 당시 이해찬 당시 민주당 당 대표가 경제전문가로 영입하며 그에게 자신의 지역구를 물려줬다. 그가 당선되면서 당내에서 ‘포스트 이해찬’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2022년 6월까지 제21대 국회의원 전반기 동안 더불어민주당 원내 부대표와 경제대변인을 맡아 활동했다.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경제·금융·공정거래·보훈 등에 대한 주요 이슈와 정책 등을 다루었으며, 운영위원회에선 국회 운영과 관련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2022년 7월부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국가 거시경제·조세·재정·통화정책 등에 대해 전문가답게 다양한 정책과 법안을 내놓았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선 예산안·결산 심의를 확정하기도 했다. 당내에선 경제위기대응특위 등에서 활동했다.
거시경제 전문가답게 그는 무작정 꾸짖고 호통치는 것이 아닌, 정부와 국회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문제 지적과 대안제시에 노력했다고 한다. 그 결과 2020년, 2021년 2년 연속 더불어민주당 국정감사 우수의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정치인은 증권맨보다 더 어렵다는 생각이다. 지역구 국회의원으로서 지역 구민을 관리하면서 여러 정책도 개발해야하는 두 가지 일을 병행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역구를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선 리더십이 뛰어나야 한다. 각계 각층의 지역구민과 잘 소통하며 그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게 정말 쉽지 않다. 잘 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지역구민 기대에 제대로 부응하고 있는지 항상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국회의원은 세 가지로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했다. 당직에 주력하는 이가 40%, 정책분야에 주력하는 이가 40%, 당내외 투쟁에 힘을 쏠는 이가 20% 정도 된다는 것이다. 자신은 경제 정책분야에 주력하고 있기도 하지만 당직이나 당내외 투쟁에도 소홀히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는 ‘수축사회’에서 정치의 3가지 역할을 강조했다. 첫째 국가 전체 차원에서 정책을 만들고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갈등을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정치는 과거보다는 미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체적 시각, 갈등 조정, 미래 지향은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정치인은 증권맨보다 보다 많은 노력과 희생을 해야한다는 생각이다.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늘 노력한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와 사랑이 넘치는 어머니 슬하에서 자라면서 할아버지의 가르침으로 6살 때 천자문을 뗐다. 이후 평생을 읽고 쓰고 공부하는 습관을 갖게 된 독서광이 됐다. 서양 로마시대 지성인은 ‘3R-읽기(reading), 쓰기(writing), 셈하기(arithmetic)’를 갖춰야 헸던 것처럼 그도 읽기, 쓰기에다가 증권맨으로 셈하기 능력까지 구비했으니 이 시대의 지성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 법하다.
고향 연서초등학교 재학중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이사하며 고대사범부속고등학교를 거쳐 서강대 정치외교학과를 전공했으며, 부전공으로 경제학을 공부했다. 대학 재학중에는 ROTC로 활동했으며, 졸업 후 ROTC 24기로 임관해 육군 3사단 철원 백골부대에서 철책 소대장을 맡아 부대원들을 이끌기도 했다.
그가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임 중의 하나가 서강대 ROTC 총동문회와 동기 모임이다. 국가 방위를 위해 책임을 지며 함께 군생활을 했다는 공통적인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대 초 그는 서강대 ROTC 동기들 모임을 주도, 매달 회비를 각출해 분기별 만남을 갖는다고 한다. 39명 임관자 중에 15명 안팎에 모인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남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리더십을 가졌다고 소개했다.
그는 1년에 200권 이상 책을 읽는 ‘책벌레’로도 소문나 있다. 국회의원 사무실 뿐 아니라 집에도 책장에 책이 빼곡이 들어차 있다. 주로 경제 관련 책을 많이 읽지만 문학, 역사, 철학 등 ‘문사철’에 관련된 도서도 즐겨 읽는다. 책을 읽을 때, 기억해야 할 문장을 만나면 형광색 펜으로 줄을 쳐 놓는다고 한다. 나중에 쉽게 찾아보기 위한 것이다. “책을 읽으면 삶과 세상을 좀 더 넓고 멀리 볼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엄청난 독서량 때문인 듯 ‘박사급’ 지식과 정보를 갖고 있다. 하지만 박사 학위를 갖지 않고, 석사(동국대 행정대학원) 학위를 했을 뿐이다. 미국 등 선진국으로 유학을 가지도 않았다. 오로지 국내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공부를 스스로 하며 내공을 닦아왔다. 올해 만 60세에 접어들었지만 아직 학구욕은 학생 때 못지않다. 좀 더 많은 지식, 좀 더 넓은 사회와 세상, 지역구민과 대한민국 국민과 하나가 되는 것을 항상 갈구하며 꿈꾸고 있다. 건강을 생각할 법 하지만 특별하게 건강을 위해 관리하거나 운동을 하지는 않는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큰 병 치레 없이 살아온 것도 현재의 삶에 충실하게 임한 때문이라고 믿는다. 여의도 국회의원과 강북 방학동 집에 멀지만 가급적 차량보다는 대중교통인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게 그의 원칙이다. 1시간 이상 지하철 안에서 책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가 펼치는 의정 활동이 기대되는 것은 그가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 노력하는 삶을 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김학수 월간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