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유엔은 인류의 평균수명을 측정해 연령 분류의 새 표준규정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0~17세 이하는 미성년자, 18~65세까지는 청년, 66~79세까지는 중년, 80~99세까지는 노년, 100세를 넘으면 장수노인이다.”
3년 전쯤 어느 매체 칼럼에서 이 글을 읽은 후,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저장해 두고 틈틈이 꺼내 보곤 했다. 회갑을 갓 넘긴 필자는 옛날 같으면 은퇴한 뒷방 노인네 소리를 들을 테지만, 이 칼럼의 기준에 따르면 아직 청년이다. 그래서 이 칼럼을 읽을 때마다 힘이 절로 생기고 신이 났으며 아직 무슨 일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겠구나하는 자신감이 새록새록 샘솟곤 했다. 나도 어엿한 청년이므로.
이 칼럼이 꽤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는지 각종 언론 보도부터, 출판물, 정치권 자료 등에서 인용되며 온라인 등을 통해 확산되었다. 그렇지만 방송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 진위(眞僞) 여부를 확인한 결과 잘못된 정보로 판명되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며 은퇴 후에도 건강하고 활동적인 노년층이 주목받자 그럴듯한 정보처럼 확산된 걸로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 유엔인구기금(UNFPA)과 세계보건기구(WHO)는 각종 통계에서 청년을 ‘15세부터 24세’로 분류한다고 한다. 아직도 청년인 줄 알고 좋아하다가 느닷없이 다시 뒷방 노인네 신세로 전락한 필자는 마냥 허탈해 한동안 기운이 나질 않았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날 서울 인사동에서 자그마한 공연이 열렸다. 고학찬 전 예술의 전당 사장이 75세의 나이로 신인가수 데뷔를 한 것이다. 공연명도 ‘75세 신인가수 고학찬의 비긴 어게인(Begin Again)’이었다.
선생은 스페인 국민가수로서 라틴팝의 살아있는 전설인 훌리오 이글레시아스(Julio Iglesias)를 연상케 하는 감미로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버터향이 살짝 나는 동시에 달콤하기까지 한 음색과 잘 어우러지는 곡을 선곡해 맛깔스럽게 노래 부르니 청중들이 흠뻑 빠져들었다. 노래와 노래 중간에는 구수한 입담도 펼쳤다. 먹고 사느라 바쁘고 세태에 시달리느라 힘들었던 청중들이 함께 향수에 젖었고 이야기에 공감했다.
공연 도중 선생이 한 이야기 중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이 있다. 지난해 라틴 그래미 어워드(Latin Grammy Award)에서 최우수 신인상을 수상한 앙헬라 알바레스 얘기다. 알바레스는 할리우드의 유서 깊은 나이트클럽인 아발론에서 90세에 첫 콘서트를 했다고 한다. 자신의 이름이 붙은 첫 앨범을 낸 나이가 94세다. 그녀는 95세 나이에 역대 최고령으로 신인 가수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내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같은 일을 겪었을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삶이 힘들더라도 믿음과 사랑으로 성취할 수 있는 길이 언제나 있다. 늦은 때란 없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알바레스 얘기를 하면서, “그녀에 비하면 나는 아직 어린애에 불과하다”고 선생은 익살을 부렸다. 75세의 나이에 신인가수로 데뷔한 고학찬 선생과, 95세의 나이로 신인상을 수상한 앙헬라 알바레스 같은 이들은 영원한 청년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